KFLG 출판 Insight
이 글은 KFLG(Korea Financial Leaders Group)의 출판유닛 0기가 출판한 '돈이 보이는 경제지식41 - 하성호, 홍기훈 지음'을 기반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들어가며: A학점이 넘쳐나는 세상
(출처: pixabay)
대학교 선배들과 학점 이야기를 나누면 이런 이야기를 하곤하죠.
"우리 때는 A학점 받으면 진짜 잘한 거였는데."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2024년 기준 상위 15개 대학의 전공과목 A학점 비율은 평균 45.5%입니다.
수강생 두 명 중 한 명은 A학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A학점을 받은 학생이 늘었으니 좋은 일처럼 보이지만, 그 이후가 문제입니다.
학점 인플레이션이 생기면 단지 학점이 높아지는 문제만 발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선, 학교마다 A학점을 주는 기준이 달라지면서 학생들 사이에 불평등이 생깁니다.
00대는 전공 A학점 비율이 29.7%인데, **대는 58.3%라면, 같은 A학점인데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이죠.
기업 입장에서는 어느 학교 학점이 진짜인지 알 수 없으니 학점 자체를 신뢰하지 않기 시작합니다.
학점으로 사람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면, 정작 뽑고 싶은 사람을 놓치는 역선택이 발생합니다.
역선택으로 뽑힌 신입사원의 퍼포먼스가 기대에 못 미치면, 기업은 신입 채용 자체를 줄이기 시작합니다.
학점 하나가 부풀려진 것이 결국 취업 시장 전체를 흔들 수 있는 것입니다.
화폐 인플레이션도 똑같습니다. 물가가 오르는 것 자체보다, 그 이후에 벌어지는 연쇄 반응이 더 큰 문제입니다.
화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구매력이 무너지고, 불평등이 심화되고, 기업과 소비자 모두 결정을 미루기 시작하죠.
오늘은 이러한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남기는 사회적 비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구매력 감소: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줄어든다
(출처: 한국지표누리)
인플레이션이 가장 먼저 건드리는 것은 소비자의 구매력입니다.
학점 인플레이션에서 A학점의 가치가 떨어진 것처럼, 화폐 인플레이션에서는 돈의 가치가 떨어집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마트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월급의 숫자는 같지만 실제로 손에 쥐는 것이 적어지는 구조인 것이죠.
심지어 이 부담은 모두에게 균등하게 오지 않습니다.
고정된 임금을 받는 직장인, 연금으로 생활하는 은퇴자, 저소득층일수록 타격이 큽니다.
이들은 물가가 올라도 소득을 쉽게 늘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자산 가격이 물가와 함께 오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방어가 됩니다.
즉, 인플레이션이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구매력이 줄어들면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기 시작합니다.
소비가 줄면 기업의 매출이 줄고, 기업은 생산과 고용을 줄입니다.
인플레이션이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가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2. 소득 불평등 심화: 자산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격차
(출처: 한국지표누리, 국가통계포털)
인플레이션은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를 벌립니다.
주식, 부동산 같은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인플레이션 시기에 자산 가치가 함께 오르는 혜택을 누립니다.
반면 자산 없이 임금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물가 상승 속도를 임금 상승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실질소득이 줄어듭니다.
한국에서 이 현상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 팬데믹 이후 주택가격 급등이었습니다.
2020~2021년 사이 전국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8.2p상승했고, 수도권은 4.6p까지 올랐습니다.
집을 가진 사람은 자산이 불어났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집을 살 기회를 잃었습니다.
(출처: 한국지표누리)
2021~2022년 사이 전국 주택 월세가격지수는 3.4p 증가했고, 전세가격지수는 2.2p 상승했습니다.
주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겐 오히려 부담이 늘어난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전형적인 사례였죠.
학점 인플레이션과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A학점이 넘쳐날 때 진짜 손해를 보는 건 기준을 지킨 학교의 학생들입니다.
노력해서 얻은 학점이 다른 학교의 손쉬운 학점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되니까요.
인플레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실하게 저축한 사람이 자산 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3. 경제적 불확실성: 기업도 소비자도 결정을 미룬다
인플레이션이 길어지면 경제 전체가 불확실성에 빠집니다.
기업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내년 원자재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모르는 상황에서 새로운 공장을 짓거나 인력을 늘리는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투자를 미루게 되고, 일자리 창출도 줄어듭니다.
소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사는 것이 나은지, 더 오르기 전에 서둘러야 하는지, 아니면 아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특히 주택처럼 큰 소비결정은 인플레이션 시기에 더욱 미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금리인상과 물가상승이 겹치면 구매 여건이 급격히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이 불확실성은 자산 시장에도 그대로 전달됩니다.
주식, 채권, 부동산 모두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변동성이 커집니다.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를 보수적으로 재편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4. 투자자 관점에서 인플레이션의 사회적 비용 읽기
인플레이션의 사회적 비용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 지식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의 출발점이 됩니다.
구매력이 줄어드는 시기에는 생활필수품, 음식료처럼 사람들이 줄이기 어려운 소비재가 상대적으로 버팁니다.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기에는 자산 인플레이션의 수혜를 받는 부동산, 원자재, 금 같은 실물자산이 주목받습니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기에는 방어적인 자산배분이 중요해집니다.
학점 인플레이션에서 00대가 결국 기준을 낮춘 것처럼,
경제에서도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 기존의 기준과 균형이 무너집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누군가는 기회를 잡습니다.
어느 쪽에 설 것인지는 결국 이 흐름을 먼저 읽을 수 있느냐 달려 있습니다.
✨ 글을 마무리하며
돈이 넘쳐나면 돈의 가치가 떨어집니다.
인플레이션은 단순히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 아니라, 경제 전반의 신뢰와 균형이 흔들리는 현상입니다.
구매력 감소, 불평등 심화, 불확실성 증가.
이 세 가지가 연쇄적으로 작동하면서 인플레이션은 사회 곳곳에 균열을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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